” 건축 ; 형태를 말하다 “
 
얼핏 생각하면 당연하리라 여겨지는 창작과정에서의 자의성을 꼬집어 이야기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기 보다는 새롭고, 
신선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취하게 된 형태에 대한 인식 혹은 태도들 덕분일 것이다.
본문의 내용대로 그동안 건축가들은 ‘형태의 자의성과 그 필연성’이라는 주제를 언급하기 꺼려했고, 오히려 감추려 노력해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이 책에서 ‘자신의 건축은 자의적인 것이 주도하지 않기를 의도하는 편’이라 밝히는 라파엘 모네오는 짧은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건축의 긴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견해를 진솔하고 정중하게 피력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축실무자로써 또 동시에 학생을 지도하는 이론가로써, 그가 이 주제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고민해왔을 것이고, 또 체계적으로 깊이 연구해 왔을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은 일찌감치 차치해도 무관하다.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그 사건들 안에 교묘히 자리하고 있는 모순과 역설들을 풀어헤쳐 보여주려는 의도를 힘주어 담아놓았음이 읽혀진다. 물론 책의 초반에는 텍스트를 앞에 도판을 뒤에 놓는 배열로 독자를 계속해서 다음 내용으로 끌어당기고, 후반부에 가면서 그 순서를 바꾸어 도판을 텍스트의 앞에 두어 점점 내용에 확신을 실어주는 교묘한 책의 구성도 한 몫을 했겠지만, 역사적 시간 순으로 서술해가는 구성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자의성’이라는 개념에서 의도치 않게 멀어져왔고 또 무뎌지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왜 이처럼 역사의 실천적 기초를 기반으로 한 사실적이고 실증적인 이론서가 나오지 못할까.’하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야겠다. ‘왜 우리는 실무와 이론을 함께 고민해 온 건축가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제도적인 기회의 문제인지, 개인적인 역량의 문제인지, 복합적인 둘 다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저런 건축가가 드러나 활동하고 있다는 게 부럽고 참 탐난다. 
 
시대를 통틀어 ‘자의성’과 가장 거리를 둔 건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라파엘 모네오는 ‘토속건축’이라 답했다.
문득 ‘자의성’이라는 뜻과 ‘작가성(?)’이라는 단어를 바꾸어 책의 내용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부분부분 뜻이 어긋나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역사적 에피소드의 자의적인 편집을 통해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작가성(?)을 입증한 셈이다.
자신의 뚜렷한 견해와 세심한 (글쓰기) 작업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