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으로 건축은 서사적이다. 이것과 저것의 관계를 조율하는 건축가의 작업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요구받게 된다. 또한 이를 전제로 통합된 하나의 결과물을 향해 내달리기 마련이다. 만약 밀리미터를 밀고 당기는 지지부진한 작업과정 전체를 꿰뚫는 원칙 혹은 원리를 놓치게 된다면 ‘의미있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란 구현 불가능한 관념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건축에서 합리성이란, 이미 ‘모순과 역설’이 내재되어 있는 상태를 넘어선 그 무엇을 뜻한다. 이는 스케일을 넘나들어 시간을 교차하며, 인식되고 존재하는 건축의 태생적 의무이기도 하다.
 
1. 건축가에게 디테일이란, 일종의 ‘기술권력’이다.
구축의 과정은 응당 부재 간의 분리와 접합을 필요로 한다. 그 중 무엇을 드러내고 숨길지를 정하는 기준은 구축에 담아둔 의도내지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시각은 청각과 후각을 포함한 다른 감각들을 작동시키는 촉매로써 건축적 구상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시각에 대한 집중은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유용한 기술도구로써의 디테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이다. 작업참여자, 투입될 부재, 공법의 선정, 공사의 기간 등 전체 공정의 설계뿐만 아니라, 소요될 예산의 분배 역시 디테일에 따라 그 성격을 정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건축가는 디테일의 구성을 통해 구축과정 전반을 조율할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아주 작은 부분의 조정을 통해야만 의미있는 전체를 구상할 수 있고, 또한 관념을 넘어 실제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2. 우리에게 디테일이란, 나름의 ‘자구책’이다.
 우리는 미약한 시작을 준비한다.
 우리가 믿고 따라갈 어떠한 선례도 없다.
 우리를 믿고 맏길 든든한 클라이언트도 없다.
 우리는 우리에서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단촐한 집이 필요한 건축주와 집장수들 사이에서 놓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기성건축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를 제공해야 하고, 이것들은 건축적으로 현명한 태도로 비춰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결과물은 화려할 수도 없고, 화려해서도 안된다. 보편적이고 실재적인 것들을 새롭게 다루어야만 한다. 눈에 띄는 형태도, 독특한 프로그램도, 비싼 재료도 우리 손에는 없다. 다만, 우리는 디테일을 통해 현실과 이상을 두루 타고 넘어갈 수 있을 뿐이다.
 
3. 단어의 조합이 문장의 형식으로 의미를 드러낸다.
물론 독해의 방식에 따라 이해가 곧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를 안고, 작은 부분을 고민해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행운이고, 또 달리보면 생존전략이다. 다행이다. 우리는 단단하고 건강한 그래서 지속가능한 토대를 제공받을 것이다.

“해방된 만드는 자 maker는 가능한 것 the possible에서 할 수 있는 것 the doable으로 나아가는 굽은 길을 따라간다.”  – William James –